현재까지는 진돗개의 기원에 대한 확실한 자료나 증거는 없다. 한반도에는 구석기. 신석기시대부터 이미 토착견들이  존재했음이 밝혀졌으나, 그 개들이 어떠한 경위로 진돗개의 기원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단지 몇가지의 구전전승과
 추정설이 있을 뿐이다.

   가. 중국 송나라 유입설 ( 960 - 1279 )
      중국 송나라 시대에는 한반도 남해안 지역과 빈번한 무역이 이루어졌었다. 따라서 당시 송나라 상인들이 데리고       온 개들이 가까운 진도로 유입되었거나, 또는 구전에 의하면 진도 근처에서 송나라 교역선이 풍랑을 만나 침몰
      하였는데, 이 배에 실려있던 개가 진도로 헤엄쳐 건너와 그곳의 토착견과 혼배하여 진돗개의 선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나. 몽고견 유입설(1270 - 1273, 혹은 1392년경)
      몽고견 유입설은 두가지로 주장되고 있다.
      첫째로는, 1270-1273년 고려의 삼별초군 정벌때에 들어왔다는 설이다. 삼별초군은 몽고군에 의해 후퇴하면서
      진도를 근거지로하여 저항하였으나 결국 전멸당하였고, 그때 진도에 몽고군이 주둔하면서 목양군으로 그들의
      개를 데리고 와서 길렀는데 그 개들이 진도의 토착견들과 혼배하여 오늘날 진돗개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이다.
      둘째로는, 1392년경 몽고로부터 유입되었다는 설이다. 당시 진도에 군마 종축장이 설치되었는데, 그 목장의
      번견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당시 몽고에서 직접 수입해온 개가 진도 토착견과 혼배하여 오늘날 진도개의 시조가
      되었다는 설이다.

   다. 한국 고유의 토착견이라는 설
      구석기 시대나 신석기 시대부터 한반도에 서식하던 야생 토착견이 진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오늘날까지 혈통과       야성이 순수하게 보존되어 왔다는 설이다.

   라. 구전설
      진도의 어느 선비가 과거시험 공부를 위해 여귀산이라는 곳에 입산하였다. 이 선비는 입산하면서 흰 암캐 한마리       를 데리고 입산하였는데, 이 개가 매우 영리하여 주인을 따르며 보호하였다. 그러던 중 이 암캐가 발정이 났다.
      산에는 수캐가 없었으나, 늑대가 자주 암캐 옆에서 놀면서 교미를 하였다. 그후 암캐는 새끼를 낳았는데, 황구,
      백구, 흑구, 세마리를 낳았다. 어떤 사람은 이 늑대를 숫여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새끼들이 진돗개의
      선조가 되었다는 내용이 진도 현지에서 구전으로 전하여 지고 있다. 


  
 
   이미 한반도에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때부터 원시종의 토착견이 있었음을 여러 발굴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서기 53년경에는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토착견들을 사냥개로 수입해 갔었다는 문헌자료도 있다. 이후부터 계속    일본에 수출되어 간 한국의 개들은 그 품성이 특출나게 우수해 고마이누 (고려견)또는 가라이누(가야국개)라고
   불렸으며, 신사앞에 돌상까지 세워 숭앙했다고 전해진다. (이상오, [수렵비화], 박문사, 1965) (가야국- 고대
   한반도 남해안 지역에 세워진 고대국가 이름) 그러나, 또한 여러가지 면에서 진도개는 북방계의 혈통과 연관성이
   있고, 몽고견의 유입이 가능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유추해 볼 때, 진도개는 원래 한반도에 존재하던 토착견이 몽고의
   북방견과의 혼배를 통해, 그리고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외부와 격리된 채 천년 가까이 자연적으로 혈통
   고정이 되어진 한국의 토종개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진돗개의 역사를 살펴보면,한국 민족의 수난사와 그 맥을 같이 하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몽고견 유입설에서부터 일제 식민지 치하기까지 진돗개는 한국인의 수난의 역사를 현장에서 함께 겪어야 했던
      토종인 것이다.
      일본은 1910년 한국을 강제 합병하고, 1931년 한국을 거점으로 중국과 소련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전쟁 중에 일본군인들을 동상에서 보호할 모피가 필요했으나 그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가 없었다. 마침 그
      어느 짐승보다도 방온 방습에 좋은 개가죽이 방한화로서는 최고인지라 일본은 부족한 모피를 한국의 개들에게서
      구할 궁리를하였다. 그런데 대다수 한국의 가정에서는 개들을 자연스럽게 풀어 놓고 키워왔으므로, 광견병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개들은 모두 죽게하였다. 그러나 후엔 일본인처럼 등록 증표가 없는 개는
      집에서 묶어 키우는 경우라도 모조리 들개 취급하여 씨를 말렸다. 더욱이 황국신민화에 골몰하던 일본의
      입장에서는 민족의 숨결이 담겨 있는 토종개들을 대대적으로 제거하는데 좋은 구실과 명분이 되었던 것이다.
      그 때의 타살령으로 각 지역의 고유한 토종개들이 멸종위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오늘날 전해오는 얘기로는 해남지역의 해남개, 거제도의 거제개는 당시에 멸종한 것으로, 그리고 제주도의
      제주개는 극히 소수만이 남아있을 뿐이며, 경산지역의 삽사리는 한 학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현재 복원 중에
      있다. 그러나 진도 섬만은 일본인들의 정착이 늦어졌고, 산이 많고 야생동물이 많아 개가죽이 아니고도
      모피를 구할 수가 있었으므로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일본견을 연구하던 모리교수는 진돗개가
      일본견과 유사하다는 정보를 얻게되어, 진돗개의 생물학적 보호의 가치를 인정하여 천연기념물 53호로 지정을
      받게하였다. 즉, 일본견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보호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웃지 못할 것은, 고대부터 줄곧 일본인들은 한반도의 수많은 사냥개들을 수입해 가서, 일본 각 지방의
      토착견들에게 많은 유전적 영향을 주었는데, 이젠 한반도에 들어와서 한국의 모든 토종개들을 멸종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견의 연구를 위해 한국의 한 토종견종을 보호하며, 일본견의 아류 정도로 인식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직까지도 세계 견계에서 조차 진돗개를 일본 아끼다견의 아류
      정도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 일제의 패망과 함께 2차세계대전은 끝나고 한국도 해방이 되었다. 해방이 되고 진돗개는 다시 방치되었다.
       더욱이 해방 이후 5년만에 다시 한국동란이 발발하여 견종의 보호,육성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나.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1952년부터 진도의 진돗개가 천연기념물 53호로서 국고보조를 받기 시작하여 진돗개 보호        육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오다가, 1967년 1월 16일 진돗개 보호육성법이 공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제정된 진돗개 보호육성법은 진돗개에 대한 연구 자료의 부족으로 일본의 중형견인 기쥬견의 표준을 기준으로
       삼는 미숙함을 범하기도 하였고, 또한 그 당시에도 진돗개에는 5가지 의 모색이 존재했었는데도 단지 상품성을
       고려한다는 이유만으로 과학적인 연구없이 백색과 황색만을 순종으로 인정하는 큰 실수를 범하였다. 그 이후로
       우수한 블랙탄(네눈박이)과 재구, 그리고 호구(호랑이 무늬)색의 진돗개들이 무차별 도태되어, 오늘날 진돗개의
       전반적인 색소침해 및 퇴화현상을 야기시킨 큰 원인이 되게하였다. 또한, 진돗개보호육성법 제정 이후로 진돗개        외부 반출이 더욱 금지되었고, 외부견의 진도 반입금지 또한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80년대 이르러 육지와 진도를 육로로 연결하는 다리가 개통되면서 사실상 반출입을 통제하는 일은
       어려워졌으며, 그때부터 진돗개는 육지의 수요에 따라 빈번한 반입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진도 현지의 우수견은        공공연하게 육지로 팔려나가고 현지에는 우수견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었다.
  
  다. 80년대 들어 진돗개는 또 한차례 큰 위기를 맞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혼혈, 잡종화의 문제였다.
       주로 일본의 아끼다견, 기쥬견,시바견, 중국의 차우차우견등이 혼혈의 주된 대상이었다. 혼혈의 이유는 체구가
       크고 강아지때 더 예뻐보여 판매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진돗개의 체형은 크고 둔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90년대 들어와서는 투견용이나 수렵용으로 핏불테리어와의 혼혈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라.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토종개들 중에, 현재 그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진돗개뿐이다.
       그 이유로 많은 한국의 애견인들의 진돗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라 하겠다.
       단지 진돗개에 대한 전통적인 표준을 정립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노력없이 막연하게  '세계화',
       '상품화'를 말한다면, 그것은 모래위에 성을 쌓자는 것과 같은 이치일 뿐이다.
       많은 양심적인 애견가들은 진돗개의 혼혈, 잡종화에 대해 큰 우려를 하고 있지만, 그러나 순혈진돗개는 아직
       살아있고 그 미래도 결코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